어제 저녁, 복지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던 한인 이민 여성이 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청주로 이사를 가서 더 이상 수업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 큰딸보다 조금 나이가 많습니다.
그녀는 작년 3월에 출산했고 출산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그녀의 개인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개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특히 친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았고 필요하다면 남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한국에 잘 정착하기를 바라며 KIIP 수업을 추천했습니다.
그녀는 한 번도 수업을 빠지지 않고 KIIP에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녀는 24일에 레벨 테스트를 걱정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기관을 바꾸거나 학업 중단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모르면 남편에게 물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저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며 잘 따라왔습니다.
딸아이와 저는 나이가 비슷하고 저도 산후우울증을 겪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만이라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2년 동안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저에게 이사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고는 후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회는 잠깐이었습니다.
외국인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된다는 우리나라의 정서가 반영된 사례를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작별인사도 없이 떠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진심으로 대하고 지금은 함께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다른 기관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다시 만나면 저를 기억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선생님, 저를 어떻게 아세요? 저는 선생님을 모릅니다.
” 그럴 때면 코로나 때문에 수업 시간에 마스크를 써야 해서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다고 변명합니다.
그럴 때면 홍길동의 호부호형이 떠오릅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과 국적을 분명히 기억하지만, 전 학생을 학생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그녀처럼 우리의 관계를 잠시 상기시켜주고 떠난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후회와 감정이 그네처럼 오르락 내리락합니다.
그들의 안녕을 기도하고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이렇게 문자를 보내고 떠나는 외국인들은 마치 나와 함께 할 운명인 것처럼 느껴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처럼 금세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이 서로 맺는 관계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