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험 사회주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빕니다.
기다림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다림은 그리움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을 향한 목마름이 있습니까? 분주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길 위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나요?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늙어버렸죠?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새로운 변화에 자신을 던지지 못한다는 것은 정신적 쇠퇴의 신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산다는 것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 목표를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빌 3:13b-14).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것이지만, 거기에 도달하려면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합니다.
위기가 아닌 때는 없었으나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이 어려운 상황이다.
기후위기는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과학과 기술이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터무니없이 낙관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9가지 열매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절제'(egkrateia)입니다.
자신의 욕구와 열정을 잘 관리하는 능력. 그러나 소비사회의 주체로서 우리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하차할 생각이 없습니다.
모두가 욕망의 들판을 달리느라 지쳐 있었다.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저하되었고, 서로 보살펴야 할 이웃은 짜증나는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위험사회입니다.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신촌에서 60~30대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고통에 둔감해진다.
Ernst Junger는 “당신과 고통의 관계가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한병철,
사회적 고통은 빨리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통증이 몸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이듯이, 사회에 만연한 통증은 사회의 건강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신호이다.
예수님은 고통을 외면하기보다 사람들의 고통에 뛰어들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셨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하게 하시고, 두려움 속에 사는 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기다린다면 주님께서 예전에 하시던 일을 주님께서 하시기 시작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고통에 반응할 수는 없지만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주님의 마음과 깊이 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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